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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애송 사랑시시인의시.음악.글. 2011. 10. 17. 18:31
한국 애송시 100편] '남해 금산’'( 외4편)
편집자의 말
애초에는 여섯편만 올린다고 전번 편집자의 말에서 선언했지만 나중에 다시 생각을 굴려보니 좀 더 많은 한국 애송시(조선닷컴에 올린)를 올리는 것이 조선족시문학발전에 유조하리라 느껴져 나머지 애송시들을 계속 올리려 한다.
'남해 금산’'
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돌 속에 묻힌 한 여자의 사랑을 따라 한 남자가 돌 속에 들어간다면, 그들은 돌의 연인이고 돌의 사랑에 빠졌음에 틀림없다. 그 돌 속에는 불이 있고, 목마름이 있고, 소금이 있고, 무심(無心)이 있고, 산 같은 숙명이 있었을 터. 팔다리가 하나로 엉킨 그 돌의 형상을 ‘사랑의 끔찍한 포옹’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데 왜, 한 여자는 울면서 돌에서 떠났을까? 어쩌자고 해와 달은 그 여자를 끌어주었을까?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한 남자를 남긴 채. 돌 속에 홀로 남은 그 남자는 푸른 바닷물 속에 잠기면서 부풀어간다. 물의 깊이로 헤아릴 길 없는 사랑의 부재를 채우며. 그러니 그 돌은 불타는 상상을 불러일으킬밖에. 그러니 그 돌은 매혹일 수밖에.
남해 금산, 돌의 사랑은 영원이다. 시간은 대과거에서 과거로 다시 현재로 넘나들고, 공간은 물과 돌의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든다.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닌, 안(시작)도 없고 밖(끝)도 없는 그곳에서 시인은 도달할 수 없는 사랑의 심연으로 잠기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이 되고 바위가 되는지 남해의 금산(錦山)에 가보면 안다. 남해 금산의 하늘가 상사암(相思巖)에 가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불길 속에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채 돌이 되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의 고통 속에서도 요지부동으로 서로를 마주한 채 뿌리를 박고 있는지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을 들여다보면 안다.
모든 사랑은 위험하지만 사랑이 없는 삶은 더욱 치명적이라는 것을, 어긋난 사랑의 피난처이자 보루가 문득 돌이 되어 가라앉기도 한다는 것을, 어쩌면 한 번은 있을 법한 사랑의 깊은 슬픔이 저토록 아름답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남해 금산’에서 배웠다. 모든 문을 다 걸어 잠근, 남해 금산 돌의 풍경 속. 80년대 사랑법이었다.
80년대 시단에 파란을 일으킨 이성복의 첫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1980)는, 기존의 시 문법을 파괴하는 낯선 비유와 의식의 초현실적 해체를 통해 시대적 상처를 새롭게 조명했다. ‘남해 금산’은 그러한 실험적 언어가 보다 정제된 서정의 언어로 변화하는 기점에 놓인 시다.
정끝별 명지대 국문과 교수. 1988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칼레의 바다’ 등 7편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등의 시집이 있다.
입력 : 2008.01.03 00:14 / 수정 : 2008.01.1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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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말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마음이 울렁거리는 일이다. 바람 불면 그곳이 어디든 따라 나서고 싶고, 바람 들면 온몸이 저절로 살랑살랑 나부끼게 되고, 바람나면 불타는 두 눈에 세상 보이는 것 아마 없으리. 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사무치는 일이다. 빈자리를 어루만지는 부재와 상실, 추억과 그리움으로 가슴이 시리고 뼛속까지 시리리. 그리고 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다. 물처럼 세월처럼,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지나고 나면 흔적도 없으리.
삶이, 사랑이, 시(詩)의 말이 바람이라고 생각한 적 있다. 바람(願)이라서, 바람(風) 같아서 간절한 것들이다. 이 시를 읽노라면 간절하게 그리운 부재가 떠오르고, 간절하게 따뜻한 배려가 떠오른다. 몸을 떠나 영혼으로 떠돌며 사랑하는 사람 곁을 지키던 영화 '사랑과 영혼', 그 애틋한 바람의 영혼도 떠오른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사랑의 괴로움, 사랑의 피로까지를 함께하는 바람의 마음. 그렇게 따뜻한 바람이라면 '가끔'이 아니라 매일매일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고 싶다. "목숨을 걸면 무엇이고/ 무섭고 아름답겠지./ 나도 목숨 건 사랑의/ 연한 피부를 쓰다듬고 싶다"('성년의 비밀')
이 시는 조용필이 부른 '바람이 전하는 말'의 노랫말과 흡사하다. 물론 이 시가 5년쯤 먼저다. 의사이기도 한 마종기(69) 시인은 고희를 앞두고도 여전히 젊고 댄디(dandy)하다. 어떤 선입관과 고정관념과 권위로부터 자유롭다. 동화작가 마해송과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여성 무용가 박외선 사이에서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성장해 의과대학 재학 시절 시인으로 등단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40여 년간 방사선과 전문의로 지내며 시를 써왔다.
그는 올해로 시력 49년을 맞는다. 투명하면서 울림이 깊은 그의 시에 유난히 위로받고 행복해하는 마니아들이 많다. 오롯한 그리움과 따뜻한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누군가 말했다. 그의 시는 '맹물' 같다고. 어느 날 마시면 상쾌하고 시원하고, 어느 날은 목이 메고 어느 날은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고. "나는 이제 고국에서는/ 바람으로만 남겠네"('산수유')라는 그의 최근 시의 구절이 떠오른다.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라는 이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과 함께. 그는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시민임이 분명하다, 저 바람처럼.
정끝별·시인
입력 : 2008.03.05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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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최하림
황혼이다 어두운
황혼이 내린다 서 있기를
좋아하는 나무들은 그에게로
불어오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있고 언덕 아래 오두막에서는
작은 사나이가 사립을 밀고
나와 징검다리를 건너다 말고
멈추어 선다 사나이는 한동안
물을 본다 사나이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어디로?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최하림(69)은 한글 세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1962년 평론가 김현·김치수, 소설가 김승옥과 한글 세대 최초의 동인지 '산문시대'를 함께 냈다. 최하림 시인의 시는 점점 그윽하다. 그는 내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조금 걸어나가면 강이 바라보이는 양수리 그의 집에 갔을 때에도 그는 어둠이 내리는 거실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그의 말은 "참 좋지요"가 전부였다. 그에게는 오연(傲然)함이 없다.
최하림 시인은 빛과 어둠, 정지와 운동 사이의 미묘한 오고 감을 살피는 데 놀라운 실력을 보여준다. 이 시를 읽어도 그렇다. 황혼이 내리는 무렵에 나무들이 있고 바람이 있고 오두막이 있고 사내가 있고 징검다리가 있고 흐르는 물이 있다. 이 존재들의 뒤에는 커튼처럼 황혼이 있다. 황혼은 아래로 하강하고, 바람은 직립한 나무들에게 수평으로 이동하고, 오두막과 사내는 수직으로 서 있거나 수직으로 움직이고, 물은 옆으로 흐른다. 존재들은 내려오고 올라가고 옆으로 이동한다. 움직이는가 했더니 곧 멈추어 선다. 동작을 보여주지만 격하지 않다. 시인은 돌보듯이 존재들 하나하나에 시선을 건넨다. 하나만을 전유하려는 못된 버릇도 없다. 해서 존재들은 하나하나가 언뜻언뜻하고 얼핏얼핏하다. 어느 것 하나가 도드라질 양이면 그 윤곽을 살짝 지워놓는다. 마음은 곧잘 뛰쳐나가길 좋아하는데 여기서는 그렇지가 않으니 갸륵하다. 마음은 이렇게 우묵하고 참할 때가 있다.
자작나무 껍질을 머리에 쓰고 너덜너덜하게 옷을 입고 다녔다는, 숨어 살았다는 한산(寒山)은 "우스워라, 나의 길이여/ 거마(車馬)의 자국조차 없네/ 돌고 도는 시내의 굽이를 알 수 없고/ 첩첩의 산은 그 겹을 모르겠네/(…)/ 내 여기에 이르러 길 잃고 헤매느니/ 그림자를 돌아보며 '어디로?' 물어보네"라고 썼는데, 이 시에서는 나아갈 길의 향방조차 묻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야 할 근사한 이유라도 있는 것이냐"고 잘 묻는다. 그러나 "어디로?" 라고 보채며 질문하지 말자. 다만 거기에 여기에 있을 뿐. 무릎을 모으고 앉아 있을 뿐. "우리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오래도록 걸음을 멈추고 있어야"('십일월이 지나는 산굽이에서')할 뿐. 그럴 때 손결이 한 번 스치고 지나간 듯 삶에는 빛이 인다. 그 빛에 무엇을 더 보태겠는가.
문태준·시인
박꽃
신대철
박꽃이 하얗게 필 동안
밤은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는다
벌떼 같은 사람은 잠 들고
침을 감춘 채
뜬소문도 잠 들고
담비들은 제 집으로
돌아와 있다
박꽃이 핀다
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린다
<1977년>
이 시에서 사람을 '벌떼 같은 사람'이라고 비유한 부분은 압권이다. 정신없이 분주하고 시끌시끌 작당(作黨)하여 몰려다니며 입으로 바늘 같은 독설을 내뱉는 세간의 사람들을 잉잉거리는 벌떼 무리에 비유했다. 인간의 시간이 깊은 잠에 빠져들고 소란이 뚝 그쳤을 때 자연의 시간은 도래한다. 그리고 오, 하얀 박꽃은 피어난다. 물소리는 물소리로 들린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들린다.
자연의 시간에는 살기(殺氣)가 없다. 자연의 시간은 인간의 세계를 맑게 회복시킨다. 씻어낸다. 시 '무인도'에서 "인간을 만나고 온 바다,/ 물거품 버릴 데를 찾아 무인도(無人島)로 가고 있다"라고 했을 때의 무인도처럼. 하산(下山)한 당신도 '죄(罪) 짓지 않고' 어슬렁어슬렁 자연의 시간에 살고 싶지 않으신지.
이 시는 '산(山)의 시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신대철(63) 시인의 첫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에 실려 있다. 신대철 시인은 1977년 첫 시집을 출간하고 23년간 절필을 했다. 2000년 시작 활동을 재개한 후 근년에는 알래스카, 시베리아 평원, 바이칼호, 몽골, 두만강 등 원시적이고 광활한 자연에 대한 시들을 발표하고 있다. 그곳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의 이산의 역사와 고통을 부각시키면서. 신대철 시인은 북파 공작원 부대의 학군장교로 군복무를 했고, 그 당시의 기억을 토대로 전쟁과 남북 분단의 아픈 현대사를 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충청도 청양의 깊은 산에서 화전민으로 살았던 그만의 체험은 붉은 혈액이 되어 신대철 시의 몸을 움직인다. 그의 시는 큰 산이요 큰 숲이다. 더 깊숙이 평화롭고, 깨금이 떨어지고, 아그배가 떨어지는 그런 곳. 당신도 가서 살고 싶지 않으신지.
문태준·시인
입력 : 2008.02.22 01:01 / 수정 : 2008.02.22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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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잎의 여자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病身) 같은 여자, 시집(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1978년>
오규원(1941~2007) 시인은, 보통 사람이 호흡하는 산소의 20%밖에 호흡하지 못하는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앓다 작년 겨울에 타계했다. 임종 직전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손가락으로 제자 손바닥에 써서 남겼다.
나는 이 시를 대학교 1학년 때의 여름, 한 남학생이 보낸 대학학보의 주소 띠지 속에서 처음 읽었다.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 여자에게 이 시를 옮겨 나르곤 했던가. 이 시는 시집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1978)에 실린 작품이다. 그러나 시집 '사랑의 감옥'(1991)에 3편의 연작시 중 1편으로 다시 실렸다. '언어는 추억에 걸려 있는 18세기형 모자'라는 부제가 첨가되었고, 2연의 끝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와 3연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가 바뀌었다. 부제를 첨가하여 '여자'는 '언어'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는 것을,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를 뒤로 배치하여 여자나 언어 모두 소유할 수 없는 존재임을 강조하였다.
나무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물빛이 푸르스름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물푸레, 이 시 덕분에 물푸레나무와 그 잎이 보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커다란 나무에 비해 여릿하고 포릇하고 정말 '쬐그만' 둥근 잎이었다. 천생 '여자'를 닮은, 이를테면 눈물 하면 떠오르는 글썽임이라든가, 슬픔 하면 떠오르는 비릿함이라든가. 병신 하면 떠오르는 어리숙함이라든가, 시집 하면 떠오르는 아련함이라든가….
그런 '여자'를 반복해 나열하면 할수록, 묘사하면 할수록 '여자'의 실체는 사라지고 '여자'는 신비의 옷을 입는다. 세상의 절반이 여자다. 물푸레나무에 달린 '쬐그만' 잎처럼 하고많은 여자와 '여자'라는 보통명사를 이토록 입에 척척 달라붙도록, 혀에 휘휘 휘감기도록 구체화시켜 놓고 있다니!
여자는 남자의 '여자'다. 남자의 엄마이고 누이이고 애인이고 아내이고 딸이다. 남자의 과거이고 미래이다. 남자의 부재이자 심연이고, 선물이자 폭력이다. 그러니 시작이고 끝이다. 그런 여자를 어찌 정의할 수 있으랴. 모두 가지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그런 한 '여자'를 누가 가졌다 하는가.
정끝별·시인
입력 : 2008.01.11 00:32 / 수정 : 2008.01.1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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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화(墨畵)
김 종 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1969>
김종삼(1921~1984) 시인의 시는 짧다. 짧고 군살이 없다. 그의 시는 여백을 충분히 사용해 언어가 잔상을 갖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아주 담담하다. 언어를 우겨넣거나 막무가내로 끌고 다닌 흔적이 없다. 사물과 세계를 대면하되 사물과 세계의 목소리를 나직하게 들려준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물안개가 막 걷히는 새벽 못을 보고 있는 듯하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작은 여울에 누군가가 정성스레 놓아 둔 몇 개의 징검돌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묵화(墨畵)'의 목소리도 자분자분하다.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막 돌아와 쌀 씻은 쌀뜨물을 먹고 있는 소를 보여준다. 그의 시선은 소의 목덜미에 가 있다. 하루 종일 써레나 쟁기를 끌었을, 멍에가 얹혀 있었을 그 목덜미를 보여준다. 목덜미에는 굳은살이 박였을 것이다. 그리곤 소의 목덜미와 할머니의 손을 교차시킨다. 할머니도 노동을 마치고 돌아와 소와 함께 날이 저무는 저녁을 맞고 있다. 할머니는 겹주름처럼 고랑이 나 있는 밭에 쪼그려 앉아 풀을 뽑고 돌을 캐내고 종일 호미질을 했을 것이다. 시인의 시선은 소와 할머니의 부은 발잔등으로 옮아간다. 부은 발잔등을 보여줄 뿐이지만, 우리는 소와 할머니의 하루가 얼마나 고단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이 눈여겨본 대목은 소와 할머니의 관계일 것이다. 소는 할머니를, 할머니는 소를 마주하고 있다. 이 둘 사이에 조용하고 평화롭고 안쓰러운 대화와 유대가 오가고 있다. 낮의 소란과 밤의 정적이 합수(合水)하는 성스러운 시간에 마치 삶이란 본래 비곤하고 외롭고 쓸쓸한 것이라는 듯 소와 할머니는 잠시 멈춰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하여 이 둘의 '서로 돌봄'은 훈훈하면서도 슬프다. (우리는 얼마나 이 '쓸쓸한 돌봄'을 자주 잊고 사는가) 이 시를 다 읽고 나면 우리는 얼굴 가득 흐뭇하게 피어나던 웃음이 천천히 묽어지는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된다. 본래 삶이란 웃음과 슬픔으로 꿰맨 두 겹의 옷감이라는 듯.
김종삼 시인은 등산모를 곧잘 썼고 파이프 담배를 자주 물었고 술을 좋아했고 고전음악을 즐겨 들었다. 그에게 삶은 '방대한 / 공해 속을 걷는' 일처럼 여겨졌다. 그는 '하늘나라 다가올 때마다 /맑은 물가 다가올 때마다 /라산스카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라며 인간의 원죄를, 불구의 영혼을 아프게 노래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는' 사람들과 세상을 좋아하고 동경했다. 그의 시는 말이 적었지만 정직했다. 언어의 낭비가 많고 외화(外華)에 골몰하는 시대를 살수록 언어를 지극히 아껴 쓴, 먹그림같이 실박하게 살다 간 김종삼 시인이 그립다.
문태준·시인
입력 : 2008.01.10 00:51[한국애송시 100편]김수영"풀"(외5편)
편집자의 말
한국에서는 한국 현대시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 시인 100명이 추천한 100편의 애송시를 선정하였다. 그중 6편만을 임의로 뽑아 올리는데 이른바 "순수시"만 시이고 "참여시"는 시가 아니라는 견해의 부당성에 대한 인식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6편중에는 "순수시'도 있고 "참여시"도 있다. 참여시 "풀"(김수영)이 제1위로 추천되였다.
김수영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풀은 이 세상에서 제일로 흔하다. 풀은 자꾸자꾸 돋는다. 비를 만나면 비를 받고 눈보라가 치면 눈보라를 받는다. 한 계절에는 푸르고 무성하지만, 한 계절에는 늙고 병든 어머니처럼 야위어서 마른 빛깔 일색이다. 그러나 이 곤란 속에서도 풀은 비명이 없다. 풀은 바깥에서 오는 것들을 긍정한다.
풀은 낮은 곳에서 유독 겸손하다. 풀은 둥글게 휘고 둥글게 일어선다. 꺾임이 없는 ‘둥근 곡선’의 자세가 풀의 미덕이다. 느리지만 처음 있던 곳으로 되돌리는 이 불굴의 힘을 풀은 갖고 있다. 풀은 이변을 꿈꾸지 않는다. 제 몸이 무너지면 그 무너진 자리에서 스스로 제 몸을 일으켜 세운다. 풀은 솔직한 육필이다. 풀은 ‘발밑까지’ 누워도 발밑에서 일어선다. 바닥까지 내려가 보았으므로 풀은 이제 벼랑을 모른다.
새날이 왔다. 새날을 받고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어제에 있다. 어제의 슬픔과 어제의 이별과 어제의 질병과 어제의 두려움 속에 있다. 그러나 어제의 곤란은 어제의 곤란으로 끝나야 한다. 열등은 어제의 열등으로 끝나야 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내심에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 이것을 잘 아는 사람은 만 명의 적이 와도 무서움이 없으며 물러섬이 없을 것이다. 자존(自尊)과 자립(自立)의 에너지가 우리의 자성(自性)이다.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 일어서고 있다는 믿음, 넓고 큰 세상으로 향해 가고 있다는 믿음, 당신을 더 사랑하게 되리라는 믿음, 우리는 이 다짐으로 새날을 살아야 한다. 눈사태를 뚫고 산정(山頂)을 찾아가는 산악인처럼.
타계한 해에 발표된 ‘풀’은 김수영(1921~1968)의 마지막 작품이고, 우리 시대 100명의 시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시이기도 하다. 올해로 40주기를 맞은 김수영은 전위적 모더니즘으로, 4·19 혁명 이후에는 참여시(詩)로 한국 현대시의 지평을 넓혔다. 그의 시는 사람들 가슴 속에 눕고 울고 일어서며 푸르게 살아 있다.
입력 : 2008.01.02 00:38 / 수정 : 2008.01.0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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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冬天(동천)"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은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겨울 밤하늘을 올려 본다. 얼음에 맨살이 달라붙듯 차갑고 이빨은 시리다. 문득 궁금해진다.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은 왜 한천(寒天)에 사랑의 일과 사랑의 언약과 사랑의 얼굴을 심어 두었을까. 손바닥으로 쓸어보아도 온기라고는 하나 없는 그곳에 왜 하필 사랑을 심어 두었을까. 매서운 새조차 '비끼어 가'는 사랑의 결기를 심어 두었을까.
생심(生心)에 대해 문득 생각해본다. 처음으로 마음이 생겨나는 순간을 생각해본다. 무구한 처음을, 손이 타지 않아서 때가 묻지 않은 처음을. 부패와 작파가 없는 처음을. 신성한 처음을. 미당이 한천을 염두에 둔 것은 처음의 사랑과 처음의 연민과 처음의 대비와 처음의 그 생심이 지속되기를 바랐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심어 놨'다고 한 까닭도 생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심는다는 것은 생육(生育)한다는 것 아닌가. 여리디 여린 것, 겨우 자리 잡은 것, 막 숨결을 얻은 것, 젖니 같은 것 이런 것이 말하자면 처음이요, 생양해야 할 것들 아닌가. 미당은 초승달이 점점 충만한 빛으로 나아가듯 처음의 사랑 또한 지속되고 원만해지기를 기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미당의 시에는 생명 없는 것을 생장시키는 독특한 영기(靈氣)가 서려 있다. 그는 시 '첫사랑의 詩'에서 '초등학교 3학년때 / 나는 열두살이었는데요. / 우리 이쁜 여선생님을 / 너무나 좋아해서요. / 손톱도 그분같이 늘 깨끗이 깎고, / 공부도 첫째를 노려서 하고, / 그러면서 산에가선 산돌을 줏어다가 / 국화밭에 놓아 두곤 / 날마다 물을 주어 길렀어요.'라고 하지 않았던가. 산돌을 주워 와서 물을 주어 길렀듯이 이 시에서도 미당은 '고은 눈썹'을 생장시키는 재기를 보여준다.
미당의 시에는 유계(幽界)가 있다. 그는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라며 황홀을 노래했지만 그는 우주의 생명을 수류(水流)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흘러가되 윤회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운행에서 그는 목숨 받은 이들의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노래했다. 목숨 없는 것에는 목숨의 숨결을 불어 넣었다. 미당의 시의 최심(最深)은 삶 너머의 이승 이전의 유계를 돌보는 시심에 있다. 이 광대한 요량으로 그는 현대시사에수많은 활구(活句)를 낳았다.
입력 : 2008.01.08 00:23 / 수정 : 2008.01.08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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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은 릴케와 꽃과 바다와 이중섭과 처용을 좋아했다. 시에서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의미의 두께를 벗겨내려는 '무의미 시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교과서를 비롯해 여느 시 모음집에서도 빠지지 않는 시가 '꽃'이며 사람들은 그를 '꽃의 시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1952년에 발표된 '꽃'을 처음 읽은 건 사춘기의 꽃무늬 책받침에서였다. '그'가 '너'로 되기, '나'와 '너'로 관계 맺기, 서로에게 '무엇'이 되기, 그것이 곧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구나 했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것이구나 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게 존재의 의미를 인식하는 것이며, 이름이야말로 인식의 근본 조건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대학에 와서였다. 존재하는 것들에 꼭 맞는 이름을 붙여주는 행위가 시 쓰기에 다름 아니라는 것도.
백일 내내 핀다는 백일홍은 예외로 치자. 천 년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의 꽃도 논외로 치자. 꽃이 피어 있는 날을 5일쯤이라 치면, 꽃나무에게 꽃인 시간은 365일 중 고작 5일인 셈. 인간의 평균 수명을 70년으로 치면, 우리 생에서 꽃핀 기간은 단 1년? 꽃은 인생이 아름답되 짧고, 고독하기에 연대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면, 서로에게 꽃으로 피면, 서로를 껴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늦게 부르는 이름도 있고 빨리 부르는 이름도 있다. 내 꽃임에도 내가 부르기 전에 불려지기도 하고, 네 꽃임에도 기어코 네가 부르지 않기도 한다.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부르는 것의 운명적 호명(呼名)이여! '하나의 몸짓'에서,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는 것의 신비로움이여!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꽃은 나를 보는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으나, 내가 본 가장 무서운 꽃은 나를 등진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다.
세계일화(世界一花)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한 꽃이다. 만화방창(萬化方暢)이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꽃 천지다. 꽃이 피기 전의 정적, 이제 곧 새로운 꽃이 필 것이다. 불러라, 꽃!
입력 : 2008.01.0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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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조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1926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신령'이고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그리고 시인은 '지금은'에 담긴 이 봄의 혼곤 속을 '다리를 절며 걷'고 있다.
이 시의 매력은 굳세고 비장한 의지와 어우러진 섬세한 감각에 있다. 가르마 같은 논길, 입술을 다문 하늘과 들, 삼단 같은 머리를 감은 보리밭, 살진 젖가슴 같은 흙 등 빼앗긴 들을 온통 사랑스런 여성의 몸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니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 들(판)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관능적인 연애시의 옷을 입은 지극한 애국애족의 저항시다.
입력 : 2008.03.03 01:24 / 수정 : 2008.03.0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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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1927년>
이동원과 박인수가 노래로 불러 더 유명해진 정지용(1902~1950)의 '향수'는 이십대 초반의 시인이 일본으로 유학 가기 전 고향인 충북 옥천을 다니러가며 쓴 시다. 이제 곧 떠나야 할 고향이기에 더욱 간절했을 것이다. 검정 두루마기를 즐겨 입고 정종을 좋아했던 그는 몇 순배의 술잔이 돌고 나면 낭랑한 목소리로 이 '향수'와 함께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로 시작하는 '고향'을 즐겨 낭송했다 한다. 신석정 시인은 "지용같이 시를 잘 읊는 사람은 보지 못했노라" 회고한 바 있다.
"시의 신비는 언어의 신비"라고 믿었던 그는 우리 현대시사에서 언어와 감각의 탁월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이 시 또한 소리내어 읽노라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는 ㅂㅂㅂ 말을 달리는 듯하고,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함추름 휘적시던 곳'은 ㅎㅎㅎ 흩어져 있는 듯하다. 실개천을 '옛이야기 지줄대는' 소리로, 황소를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으로, 아버지를 '엷은 졸음'으로 감각하는 솜씨 또한 일품이다. '해설피'가 해가 설핏할 무렵인지 느리고 어설프게(혹은 슬프게)인지, '석근' 별이 성근(성긴) 별인지 섞인 별인지 애매하지만 그 질감만은 새록하다.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아버지와 검은 귀밑머리를 날리는 누이와 사철 발벗은 아내가 집안에 있고 집밖으로는 넓은 벌과 실개천이, 파란 하늘과 풀섶 이슬이, 석근 별과 서리 까마귀가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이미 마음의 고향이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를 후렴처럼 노래하며 '그곳'을 그리듯 보여주는 단순한 시 형식은 음악적 울림은 물론 애틋한 향수의 정감을 쉽고 실감나게 전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흙에서 자란 마음'을 서늘옵고 빛나게 '이마받이'해보는 아침이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춘설(春雪)')롭지 아니한가.
입력 : 2008.02.27 23:55 / 수정 : 2008.03.04 17:34
윤동주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1917~1945) 시인은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어둠과 황폐를 의식의 순결함으로 초월하려고 했다. 그는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또 다른 고향')고 써 스스로를 반성했고,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고 쓰며 자신을 끊임없이 돌이켜 봤다.
종교적인 순교의 의지로도 읽히고 독립에의 의지로도 읽히는 등 다양한 해석의 층위를 갖고 있는 이 시를 쓴 것은 1941년 11월로 알려져 있다. 윤동주는 1941년 자선 시집을 내려고 했으나 주변에서 시국을 염려해서 시집 출간 연기를 권함에 따라 뜻을 미루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1943년 7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고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출감을 기다렸지만 불운하게도 해방을 불과 반년 앞둔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의 차디찬 바닥에서 옥사했다.
윤동주 시인은 생전에 한 편의 시도 발표하지 못했다. 다만 이 시가 포함된 원고뭉치가 국문학자 정병욱의 어머니에 의해 장롱 속에 몰래 보관되다가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유고시집으로 발간되었다. 정지용 시인은 유고시집의 서문에서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라고 써서 청년 윤동주의 죽음을 애도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별 헤는 밤')고 노래한 영원한 청년 윤동주. 생전에 그는 자기 성찰로 뒤척이는 한 잎의 잎새였으나, 이제 보석처럼 빛나는 천상의 별이 됐다.
입력 : 2008.03.03 23:53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한국 애송시 100편] <우리가 물이 되여>( 외4편)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處女)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의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萬里)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人跡)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물은 선하다. 물은 그 자체로 흐르는 모습이다. 흐르는 에너지이다. 물은 작은 샘에서 솟고, 뿌리에게 스미고, 하나의 의지로 뭉쳐 흐르고, 환희로 넘치고, 작별하듯 하늘로 증발하고, 우수가 되어 떨어져 내리고, 다시 신생의 생명으로 돌아와 이 세계를 흐른다.
우리가 태어나고 사귀고 웃고 슬프고 울고 아득히 사라질 때에도 물은 우리보다 먼저 이 세계에 왔으며 우리보다 먼저 사라졌으며 우리보다 먼저 다시 태어났으니, 유한한 우리에게 물은 한 번도 태어난 적이 없고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물은 불과 흙과 공기와 더불어 이 세계가 온존하는 한 온존할 것이다. 해서 물은 모든 탄생과 소멸을 완성하며, 그 자체로 소생하고 순환하는 생명이다.
이 시를 읽을 때면 '선한 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불이 어떤 부정과 대립이라면 물은 그마저도 끌어안는 어떤 관용. 물은 사랑. 자주 침묵하지만 한 번도 사랑을 잊은 적이 없는 마음 큰 이. 우리도 서로에게 물이 되어 서로의 목숨 속을 흐를 수 없을까.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 없을까. 물과 같고 대지와도 같은 침묵의 큰 사랑일 수 없을까.
강은교(62) 시인이 '사랑法'이라는 시에서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중략)//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라고 노래했듯이.
강은교 시인은 1968년에 등단해 올해로 등단 40주년을 맞았다. 초기에 발표한 시들이 강한 허무 의식을 드러냈기 때문에 그녀를 '허무의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그녀의 시는 민중적인 서정에도 가 닿고, 사소하고 하찮은 생명들을 끌어안기도 하는 등 아주 큰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나는 어느 해엔가 그녀가 시의 낭송과 울림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 속 질병과 상처를 치료하는 '시 치료' 공연을 하는 것을 감명 깊게 본 적이 있다. 그때에도 지금에도 강은교 시인은 이 세계의 순례자로서 이 세계의 구원을 위해 생명수를 구해오는 바리데기의 현신이다.
문태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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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와 숙녀
박 인 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燈臺)에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시냇물 같은 목소리로 낭송했던 가수 박인희의 '목마와 숙녀'를 옮겨 적던 소녀는 이제 중년의 '여류' 시인이 되었다. '등대로(To the lighthouse)'를 쓴 버지니아 울프는 세계대전 한가운데서 주머니에 돌을 가득 넣고 템스강에 뛰어들었다. '추행과 폭력이 없는 세상, 성 차별이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간직하며'라는 유서를 남긴 채. '목마와 숙녀'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페시미즘의 미래'라는 시어가 대변하듯 6·25전쟁 이후의 황폐한 삶에 대한 절망과 허무를 드러내고 있다.
수려한 외모로 명동 백작, 댄디 보이라 불렸던 박인환(1926~1956) 시인은 모더니즘과 조니 워커와 럭키 스트라이크를 좋아했다. 그는 이 시를 발표하고 5개월 후 세상을 떴다. 시인 이상을 추모하며 연일 계속했던 과음이 원인이었다. 이 시도 어쩐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일필휘지로 쓴 듯하다. 목마를 타던 어린 소녀가 숙녀가 되고, 목마는 숙녀를 버리고 방울 소리만 남긴 채 사라져버리고, 소녀는 그 방울 소리를 추억하는 늙은 여류 작가가 되고…. 냉혹하게 '가고 오는' 세월이고,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로 요약되는 서사다.
우리는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생명수를 달라며 요절했던 박인환의 생애와, 시냇물처럼 흘러가버린 박인희의 목소리와, 이미 죽은 그를 향해 "나는 인환을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고 쓸 수밖에 없었던 김수영의 애증을 이야기해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인 것을, 우리의 시가 조금은 감상적이고 통속적인들 어떠랴. 목마든 문학이든 인생이든 사랑의 진리든, 그 모든 것들이 떠나든 죽든,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바람에 쓰러지는 술병을 바라다보아야 하는 것이 우리 삶의 전모라면, 그렇게 외롭게 죽어 가는 것이 우리의 미래라면.
정끝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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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
노 천 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곤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쳐다본다
<1938년>
▲ 일러스트=잠산 노천명(1911~1957) 시인은 어릴 때 홍역을 앓아 사경을 헤매다 다시 소생했는데 이 때문에 이름을 '천명(天命)'으로 바꾸었다. 하늘로부터 다시 받은 목숨으로 천수(天壽)를 누리라는 뜻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평생 독신으로 살다 1957년 타계했다. 노천명 시인은 고독의 차가운 차일을 친 시인이었다. 실제로도 고독벽이 있었다. 시 '자화상'에서 자신의 풍모를 "몹시 차 보여서 좀체로 가까이 하기 어려워한다"라고 썼고, "꼭 다문 입은 괴로움을 내뿜기보다 흔히는 혼자 삼켜버리는 서글픈 버릇이 있다"라고 썼다.
이 시는 한 마리의 사슴을 등장시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다. 시인은 사슴의 몸통과 다리를 배제한 채, 자화상을 그리는 화가처럼 사슴의 목 윗부분을 그려낸다. 관(뿔)을 쓴 '높은 족속'으로 스스로를 도도하고도 고고하게 표현하지만, 2연에서는 물리칠 수 없는 마음의 통증을 보여준다. 마음의 통증은 어디에서 연유할까. 노천명은 많은 시편에서 어릴 때의 평온했던 시간으로 귀소하려는 욕구를 드러낸다. "절편 같은 반달이 싸리문 우에 돋고", "삼밭 울바주엔 호박꽃이 화안한 마을"로 시인의 마음은 자주 이끌린다. 그 시간들은 화해와 무(無)갈등과 동화적인 세계이다. 그런 세계를 동경하는 화자와 현실 사이의 괴리가 마음의 결손을 유발한다. 그 괴리의 거리와 슬픔의 크기를 시인은 가냘프고 긴 사슴의 목에 빗대어 말하고 있다.
삶은 고독과 갈등의 경전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몸을 받을 때부터 고독의 의복을 입고 태어났다. 그러나 우리는 고독의 정면(正面)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고독의 시간이라야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를 만날 수 있고, 그때 참회와 기도가 생겨나게 되지만. 해서 모든 종교적인 시간은 고독의 시간이지만. 릴케의 표현처럼 "고독은 비와도 같은 것"이며, "(고독은)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같은 잠자리에서 함께 잠을 이루어야 할 때"처럼 흔하게 찾아오는 것. 너무나 마음 쓸 데가 많아서 도무지 고독할 시간조차 없다고 말하지 말자. 이 시를 애송하는 시간에라도 우리는 우리의 근원적인 고독의 시간을 살자. 나의 자화상을 솔직하게 들여다보자. 고립감이 자기애로 나아가더라도. 설혹 자기애에 빠져 나르키소스처럼 한 송이의 수선화로 피어나더라도.
남빛 치마와 흰 저고리를 즐겨 입었다는 노천명 시인은 한국시사에서 시적 대상을 시적 화자와 겹쳐 놓음으로써 현대 서정시의 동일성 시학을 선보인 최초의 여성 시인이었다.
문태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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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기 형 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1989년>
기형도(1962~1989) 시인의 마지막 시다. 1989년 봄호 문예지에서 이 시를 읽었는데 일주일 후에 그의 부음을 접했다. 이제 막 개화하려는 스물 아홉의 나이에, 삼류 심야극장의 후미진 객석에서 홀로 맞아야 했던 그의 죽음에 이 시가 없었다면 그의 죽음은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초라했을 것인가.
어릴 적부터 살던 집에서 이사를 계획하고 쓰여졌다는 후일담도 있지만 이 시는 사랑의 상실을 노래하고 있다. 사랑으로 인해 밤은 짧았고, 짧았던 밤 내내 겨울 안개처럼 창 밖을 떠돌기도 하고 촛불 아래 흰 종이를 펼쳐놓은 채 망설이고 망설였으리라. 그 사랑을 잃었을 때 그 모든 것들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이 되었으리라. 실은 그 모든 것들이 사랑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떠나보낸 집은 집이 아니다. 빈집이고 빈 몸이고 빈 마음이다. 잠그는 방향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문을 잠근다'는 것은, '내 사랑'으로 지칭되는 소중한 것들을 가둔다는 것이고 그 행위는 스스로에 대한 잠금이자 감금일 것이다. 사랑의 열망이 떠나버린 '나'는 '빈집'에 다름 아니고 그 빈집이 관(棺)을 연상시키는 까닭이다. 삶에 대한 지독한 열망이 사랑이기에, 사랑의 상실은 죽음을 환기하게 되는 것일까.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 나직이 되뇌며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을 하나씩 불러낸 후 그것들을 떠나보낼 때, 부름의 언어로 발설되었던 그 실연(失戀)의 언어는 시인의 너무 이른 죽음으로 실연(實演)되었던가. 죽기 일주일 전쯤 "나는 뇌졸중으로 죽을지도 몰라"라고 말했다던 그의 사인은 실제로 뇌졸중으로 추정되었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오래된 서적')이라 했던 그가, 애써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정거장에서의 충고')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건만.
그가 소설가 성석제와 듀엣으로 불렀던 팝송 'Perhaps Love'를 들은 적이 있다. 플라시도 도밍고의 맑은 고음이 그의 몫이었다. "Perhaps, love is like a resting place…"로 시작하던 화려하면서 청량했던 그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질투는 나의 힘')라는 그의 독백도.
정끝별·시인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한국애송동시]해바라기 씨(외7편)해바라기 씨 정 지 용
해바라기 씨를 심자.
담모퉁이 참새 눈 숨기고
해바라기 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가 앞발로 다지고
괭이가 꼬리로 다진다.
우리가 눈감고 한밤 자고 나면
이슬이 내려와 같이 자고 가고,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햇빛이 입 맞추고 가고.
해바라기는 첫 시악시인데
사흘이 지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아니 든다.
가만히 엿보러 왔다가
소리를 꽥! 지르고 간 놈이―
오오 사철나무 잎에 숨은
청개구리 고놈이다.
(1939)
정지용(1902~1950)은 불과 11세에 이웃 마을에 사는 은진송씨(恩津宋氏)의 딸을 맞아 결혼했다. 요즘 사람들이야 기절초풍할 일이지만, 조혼이 드물지 않던 당대에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장남이 태어난 것은 시인의 나이 26세 때다. 3년 뒤에 차남을 얻고, 그 뒤로도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더 두었다. "일찍이 나의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잃었다"라는 언급을 보면 홍역 따위로 죽은 자식이 더 있으리라 추정된다. 시인은 아이를 잃은 슬픔을 녹여 〈유리창〉이라는 명편을 빚기도 했다.
이 동시는 《아이생활》 146호(1939년 5월호)에 발표한 동시다.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은 농업 노동의 근간이다. 해바라기 씨를 심는 일은 아이들에게 놀이로서 그 노동을 겪게 한다는 뜻이 있다. 참새, 바둑이, 괭이, 청개구리들은 아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놀이와 삶의 조력자다. 씨를 묻고 다지는 데 바둑이와 괭이도 일손을 보탠다. 아이들은 함께 일하는 즐거움과 더불어 세상의 일들이 협동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청개구리가 싹이 났나 엿보러 온다. 씨 묻은 데를 엿보는 청개구리를 아이들이 엿보고, 또 그 아이들을 아빠가 엿본다. 청개구리가 놀라서 소리를 꽥 지르고, 아이들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겠다. "사철나무 잎에 숨은 청개구리 고놈"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아빠의 사랑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1939년이면 장남 구관이 11세, 차남 구익이 8세, 3남 구인이 6세, 장녀 구원이 5세 때다. 시인은 올망졸망한 이 아이들에게 읽어 주려고 여러 편의 동시를 지었다. "별똥 떨어진 곳 /마음해 두었다 /다음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인젠 다 자랐소."(〈별똥〉)와 같은 동시는 함축적으로 인생의 한 진실을 아릿하게 드러낸다. 바다를 가리켜 "푸른 도마뱀떼같이 /재재발렀다."(〈바다 2〉)고 썼듯이 정지용은 시를 이미지 예술로 끌고 갔다. 금강산과 한라산 같은 명산을 시로 옮긴 시집 《백록담》은 산수화첩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동시도 아버지와 아이가 담 아래 텃밭에 해바라기 씨를 심고 싹을 기다리는 정경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드러난다.
장석주·시인
입력 : 2008.05.26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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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문 삼 석
엄만
내가 왜 좋아?
-그냥….
넌 왜
엄마가 좋아?
-그냥….
(2000)
'그냥'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그 상태 그대로' 혹은 '그런 모양으로 줄곧' 등이다. '그냥 내버려두다' 혹은 '그냥 기다리고만 있다'라고 할 때의 '그냥'은 바로 이와 같은 의미로 쓰인 경우다. 그런데 '그냥'은 또한 '아무런 대가나 조건 없이'란 뜻도 있다. '그냥 주는 돈이 아니다'라고 할 때의 '그냥'이 이에 속한다. 그렇다면 위 시의 '그냥'은 이 가운데 어디에 속할까?
문삼석(67) 시인은 엄마와 아이의 사랑을 '그냥'이라는 말 속에 함축했다. 아이와 엄마는 막 잠에서 깨어 서로의 몸을 간질이며 까르르 웃고 있는 중이다. 엄마가 아이의 몸에 살짝 손을 대기만 해도 아이는 몸을 오그리며 숨이 넘어가도록 킥킥댄다. 아니다. 아이는 일하는 엄마 옆에서 방바닥에 배를 대고 숙제를 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힘겹게 글씨를 쓰고 덧셈을 하는 아이를 언뜻언뜻 돌아보며 엄마는 잠시 일하던 손을 놓고 빙그레 웃는다. 사정이 어떻게 되었든 이 시 속의 아이와 엄마는 서로 '마주본다'.
이 마주봄은 서로에 대한 사랑의 궁극, 절대적 신뢰의 한 표현이다. 그것은 터져 나올 것 같은 행복의 비명이자 살아 있음에 대한 환희이기도 하다. 이 숨 막힐 것 같은 사랑의 회오리 속에서 아이는 저도 모르게 묻는다. 엄만 내가 왜 좋아? 이것은 질문이되 질문이 아니다. 아이는 다만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충만한 사랑을 느끼고 있는지, 그것을 표현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시의 '그냥' 역시 답이되 답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다. 사전이 정의하고 있는 그 어떤 의미도 이 시의 '그냥'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
"엄마는 아가를/ 품속에 안고서도/ "아가야, 아가야."/ 아가만 부르지요."(〈엄마와 아가〉)라거나 "엄마는 나 몰래 나가셨지만/ 어디 계시는지 난 다 알지요./ 달그락달그락 그릇 소리가/ 부엌에 계신다고 알려 주거든요."(〈난 알지요〉)라고 노래할 때, 문삼석 시인은 이미 아이와 엄마의 사랑은 설명 불가능의 영역, 즉 이른바 '언어도단'의 경지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에게 '그냥'은 존재하는 것들이 내지르는 신음소리에 가깝다. 세상의 어떤 사전에도 이때의 '그냥'은 등재되어 있지 않다. 그것의 용례는 오로지 시인의 작업 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시인이 새로운 말의 창조자라는 이야기는 괜한 소리가 아니다.
신수정·문학평론가
입력 : 2008.05.2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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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임 석 재
조록조록 조록조록 비가 내리네.
나가 놀까 말까 하늘만 보네.
쪼록쪼록 쪼록쪼록 비가 막 오네.
창수네 집 갈래도 갈 수가 없네.
주룩주룩 주룩주룩 비가 더 오네.
찾아오는 친구가 하나도 없네.
쭈룩쭈룩 쭈룩쭈룩 비가 오는데
누나 옆에 앉아서 공부나 하자.
비에게는 특별한 뭔가가 있다. 진 켈리가 나오는 영화 《싱잉 인 더 레인》(Singin' in the Rain)을 떠올려 보라. '사랑은 비를 타고' 오고 사랑에 빠진 남자는 빗속에서 노래하고 춤을 춘다. 비가 오면 봄의 초본식물들은 키가 쑥쑥 자라고, 버섯은 자라나 포자를 퍼뜨리고, 달팽이들은 사랑을 나눈다. 태양의 업적들이 과대평가된 반면에 비에 대한 평판은 좋은 편이 아니다. 비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는 것은 비가 종종 소풍과 행사와 잔치를 망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비는 종종 사랑의 낭만적 매개자다. 비가 없다면 프랑스와 중국과 영국과 인도와 터키와 베트남에서 그 많은 낭만적 시와 소설과 영화들은 아예 세상에 나올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비라고 해서 다 같은 비가 아니다. 생긴 모양이 다르고, 내리는 모습이 다르고, 내릴 때 소리가 다르다. 비는 강약에 따라 조록조록도 내리고 쪼록쪼록도 내린다. 또 주룩주룩도 내리고 쭈룩쭈룩도 내린다. 시인은 몇 개의 간단한 부사어로 비 내리는 광경을 차별화하는 마술 같은 솜씨를 보여준다. 비가 오자 소년의 집은 빗속에 포위된다. 비는 오고 감을 막고, 소년을 권태에 가둔다. 이 뜻밖의 나른한 권태에 어쩔 줄 몰라 뒹굴뒹굴 하던 소년은 마침내 누나 옆에서 얌전히 책을 펴놓고 공부를 한다. 조록조록과 쪼록쪼록 사이에서, 주룩주룩과 쭈룩쭈룩 사이에서 몸을 쓰는 일에 제약을 받고 외적 활동이 제한된다면 거꾸로 소년의 내면 삶은 풍부해질 터다.
이 동시를 지은 임석재(1903~1998)는 문단보다는 학계와 민속학 쪽에서 더 이름이 난 분이다. 경성제대 철학과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 사범대에서 교수를 지냈다. 한편으로 동요와 동시, 동화들을 남겼는데, 〈비 오는 날〉은 그중의 한편이다. 비가 불러온 이 뜻밖의 휴지기(休止期), 발랄한 몸짓을 멈추게 한 정일(靜逸)의 한때가 해 나는 날이 있으면 비 오는 날도 있고, 세상 일이 제 뜻대로만 될 수 없다는 깨달음과 더불어 소년을 생각이 깊은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 데 보약 같은 보탬이 되었으리라.
장석주·시인
입력 : 2008.05.27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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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와 도둑
피 천 득
마당에 꽃이
많이 피었구나
방에는
책들만 있구나
가을에 와서
꽃씨나 가져가야지
(1997)
이 시의 화자는 도둑이다. 도둑이란 초대받지 못한 자다.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방문은 그의 몫이다. 이 시의 화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가 방문한 집에는 훔칠 게 없다. 마당엔 꽃이 만발하고 방안엔 책이 가득하다. 그리곤 그만이다! 어쩌겠는가. 가을에 다시 와서 꽃씨나 가져갈밖에.
1910년 5월 29일 오늘, 이 시의 저자 금아 피천득 선생이 태어났다. 금아의 영결식이 있던 날도 작년 이 날이다. 2007년 5월 25일 세상을 뜨기까지 선생은 만 97년을 우리와 함께했다. 이 기간에 그는 수필 〈인연〉의 저자로, 또 셰익스피어 소네트 번역자로, 그리고 아름다운 서정시를 생산해낸 시인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넘어 그는 무엇보다도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나의 사랑하는 생활〉)고 고백한 '일상의 성자'이기도 했다.
이 시에서도 그의 '소박한 탈속의 경지'는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는 편이다. 그는 도둑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그가 가진 것이라곤 오로지 마당의 꽃과 서재의 책들뿐이다. 도둑으로선 이런 종류의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다. 그런데 이 경이는 누군가를 도덕적으로 억압하거나 무엇인가를 권위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가능한 그것들과 멀리 떨어진 어떤 삶, 즉 천진한 유머와 아이로니컬한 농담의 세계와 관련이 있다. 마지막 연에서 도둑이 '가을에 다시 와서 꽃씨나 가져가야겠다'고 의뭉스럽게 중얼거리는 것을 보라. 아마도 이 유머와 농담은 선생의 삶을 특징짓는 어떤 선적인 경지 같기도 하다.
"눈보라 헤치며/ 날아와// 눈 쌓이는 가지에/ 나래를 털고// 그저 얼마동안/ 앉아 있다가// 깃털 하나/ 아니 떨구고// 아득한 눈 속으로/ 사라져가는// 너"(〈너〉)라는 시가 잘 보여주듯 그에게 삶은 눈 쌓인 가지에 앉았다가 '깃털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가는 아득함과 무관하지 않다. 그가 남긴 것은 사랑하는 딸 서영이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인형 난영과 배우 잉그리드 버그먼의 사진이 다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면/ 하늘을 넓고 넓고 푸르게 그립니다// 집과 자동차를 작게 그리고/ 하늘을 넓고 넓고 푸르게 그립니다// 아빠의 눈이 시원하라고/ 하늘을 넓고 넓고 푸르게 그립니다"(〈그림〉). 단지 '넓고 푸른 하늘'이면 족할지도 모른다. 그는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신수정·문학평론가
입력 : 2008.05.28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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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너머 저쪽
이 문 구
산 너머 저쪽엔
별똥이 많겠지
밤마다 서너 개씩
떨어졌으니.
산 너머 저쪽엔
바다가 있겠지
여름내 은하수가
흘러갔으니.
(1988)
이문구(1941~2003)는 본디 소설가다. 호는 명천(鳴川)이다. 오래 묵은 농경유림(農耕儒林)의 삶과 해체 위기에 놓인 농촌 현실을 걸쭉한 충청도 토박이말로 풀어낸 《관촌수필》과 《우리 동네》 연작소설을 읽으며 감동에 젖었던 시절이 떠오른다. "한국놈덜은 지겟다리 자손두 동네 이장만 되면 금방내 관청 편이 된다는 거"와 같은 충청도 사투리에 담긴 풍자는 통렬하다. 위암으로 투병하다가 62세로 세상을 뜨며, "한 세상 고맙게 잘 살다 여한 없이 가니 내 죽거든 화장해 뿌려 아무 흔적 남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쓰다 남은 몸에서 나온 골분(骨粉)은 고향인 보령의 산하에 뿌려지고, 뜻대로 무덤도 없고 문학비도 세우지 않았다.
아이는 "산 너머 저쪽"으로 떨어지는 별똥을 봤다. 별똥은 "산 너머 저쪽"으로만 떨어졌으니, 거기에 별똥이 많이 있겠거니, 상상하는 건 당연하다. 아이는 "산 너머 저쪽"으로 여름내 흘러가는 은하수를 보았으니, 거기에 바다가 하나 생겼거니, 상상하는 건 당연하겠다. '저쪽'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길에는 얼마간 그리움이 섞여 있다.
'이쪽'이 현재라면 '저쪽'은 영원히 오지 않는 현재다. '이쪽'은 가난, 질병, 지진, 유혈분쟁 따위로 얼룩져 있다. 한숨과 눈물과 비통한 울부짖음이 그칠 날이 없다. '저쪽'은 인종이나 민족 간의 분쟁이나 폭동, 왕따나 디아스포라가 없다. 한 경전을 인용하면, 모든 땅 위의 야포(野砲)들을 녹여 농기구를 만들고, 사슴이 늑대와 함께 풀을 뜯고, 사자가 어린아이와 함께 노니는 곳이다. 광우병이나 죽음도 없고, 지진이나 교통사고 따위도 일어나지 않는 곳이다. 고달플 때 우리는 '저쪽'을 바라보고 꿈꾸며 그 고달픔을 견뎌냈다.
이문구는 《개구쟁이 산복이》라는 단 한 권의 동시집을 펴냈다. 〈산 너머 저쪽〉은 그 중의 한 편이다. 우리는 삶을 견디고 살아내기 위해 없는 '저쪽'을 발명하고 현실의 어딘가에 그 자리를 만들었다. '이쪽'의 수고와 고달픔이 '저쪽'이 있어야 할 당위를 이룬다. 있음과 있어야 함 사이의 간격이 커질수록 삶은 거칠고 고달파진다. 삶이 누추하고 비참할수록 살아보지 못한 '저쪽'은 언젠가 가야 할 그리움의 자리, 즉 극락정토, 무릉도원, 엘도라도일 것이다.
장석주·시인
입력 : 2008.05.29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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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속의 자동차 - 봄에서 겨울까지2
오 규 원
뿌리에서 나뭇잎까지
밤낮없이 물을
공급하는
나무
나무 속의
작고작은
식수 공급차들
뿌리 끝에서 지하수를 퍼 올려
물탱크 가득 채우고
뿌리로 줄기로
마지막 잎까지
꼬리를 물고 달리고 있는
나무 속의
그 작고작은
식수 공급차들
그 작은 차 한 대의
물탱크 속에는
몇 방울의 물
몇 방울의 물이
실려 있을까
실려서 출렁거리며
가고 있을까
그 작은 식수 공급차를
기다리며
가지와 잎들이 들고 있는
물통은 또 얼마만할까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 본다" 생전에도 폐기종으로 고통받았던 한 시인은 오랫동안 공기 좋은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서후리의 주민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2007년 2월 향년 66세로 마침내 강화도 전등사의 한 나무 아래 영원히 잠들었다. 그 나무는 지금 '오규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시인은 나무가 되었다.
그러려고 그랬을까. 그의 시에서 나무는 그 자체로 언제나 하나의 우주다. 그는 나무가 뿜어내는 삶의 에너지를 감지하고 그 세계의 이치에 귀를 기울인다. 그 순간 그는 본다. 나무를 구성하는 작은 입자들의 앙증맞은 움직임을. 이 '식수 공급차'는 뿌리에서 나뭇잎까지 밤낮없이 물을 싣고 달린다. 나무 속의 이 '작고작은' 자동차들을 상상하는 시인은 기어이 그 자동차의 물탱크 속에 실려 있을 '몇 방울의 물'들까지 들여다보고야 만다. 그리고 마침내 그 물을 기다리는 가지와 잎들의 '물통'을 상상하며 이 미시적인 우주를 완성한다.
이런 종류의 상상력은 오랫동안 홀로 아파 본 사람의 것이다. 병 때문에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지 못한 채 하루 종일 나무와 풀, 이름 모를 새, 흘러가는 구름 등을 벗 삼아 자연 속에서 그것과 하나가 되어 살 수밖에 없는 자는 이 밋밋한 일상 속에 작은 우주를 구축한다. "산에서 시를 쓰면/ 시에서 나는 산 냄새// 소나무, 떡갈나무, 오리나무의 냄새/ 산비둘기, 꿩, 너구리, 오소리의 냄새// 산에서 시를 쓰면/ 시에 적힌 말과 말 사이에/ 어느새 끼어 있는 그런 산 냄새"(〈산〉). 이 산 냄새가 왠지 모를 고독을 동반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원래 그가 동시집을 묶어낼 계획은 훨씬 훗날의 것이었던 듯하다. 1995년 시인은 그간 써왔던 동시들을 묶어내면서 '10년 후에도 맑은 정신으로 이 동시들을 대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어 그렇게 한다고 덧붙였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의 예감은 적중한 듯하다. 이를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쉽다고 해야 하나? 시인은 가고 시만 남았다. 슬프다.
신수정·문학평론가
입력 : 2008.05.30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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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한 하 운
가갸 거겨
고교 구규
그기 가.
라랴 러려
로료 루류
르리 라.
(1949)
한하운(1919~1975)은 함경남도 함주 태생으로 본명은 태영(泰永)이다. 한때 경기도청의 공무원이었는데, 한센병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가 요양하다가 1948년에 남쪽으로 내려 왔다. 1949년에 첫 시집 《한하운시초》(1949·정음사)를 냈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 /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전라도길〉) '문둥병'이라는 천형의 병고를 지고 걷는 인생길은 팍팍해서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숨 막힌 길이었겠다.
그 숨 막히는 길에 개구리 울음 소리는 천둥 치는 듯하다. 그 굉음(轟音)이 시방세계를 떠밀고 어디론가 데려간다. 산 것들은 왜 태어나는가. 산 것들은 왜 저리도 울어대는가. 저 무논에서 울려 퍼지는 제창(齊唱)을 그레고리오 성가라면 하면 안 되나. 호모 사피엔스는 저 양서류의 떼울음 소리를 어린 것이 한글 자음과 모음을 외는 소리로 들었다. 묵독(默讀)이 아니다. 어린 것들은 낭랑한 목청으로 음독(音讀)한다. 호모 사피엔스여, 너의 유아독존과 이성(理性)을 자랑하지 마라. 봄밤은 온통 법당이고, 저 미물의 소리가 바로 게송(偈頌)이다. 소록도는 먼데, 개구리 울음 소리는 세상에 그득하다. 지구가 자전(自轉)하는 이 밤에도 저 어린 것들의 학습 진도는 거침이 없구나. 가갸 거겨에서 시작해서 벌써 라랴 러려까지 나갔구나.
개구리 울음 소리를 듣는 자는 필경 집 밖에 있는 자다. 집 나와 길 가는 자는 승려나 걸인이나 '문둥이'거나 모두 출가자(出家者)다. 밤하늘을 지붕 삼고, 산발한 채 노래하며 길을 걷는 것은 한산(寒山)만이 아니다. 시인 한하운도 개구리 우는 봄밤을 하염없이 걸어 남행한다. 천안 논산 익산 정읍 지나 구례쯤 왔을까. 걸어온 길 아득한데, 저 달빛 아래 뻗은 황톳길은 더 아득하다. 버드나무 밑에서 숨을 고르며 신발을 벗는데, 발가락이 또 한 개 사라졌다. 이렇듯 산다는 것은 제가 가진 것들을 하나씩 잃는다는 것이다. 더 잃을 게 없을 때 우리는 이 육체라는 무거운 짐마저 벗어두고 세상을 뜬다. 그게 해탈(解脫)이고, 우화등선(羽化登仙)이다.
장석주·시인
입력 : 2008.06.01 23:05 / 수정 : 2008.06.01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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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윤 동 주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씻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1939)
젊어서 죽은 자는 결코 늙지 않는다. 남아 있는 자들에게 그들은 언제나 청춘이다.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수감되어 있던 일본 후쿠오카 교도소에서 외롭게 죽어간 윤동주의 나이는 겨우 27세였다. 체포된 지 19개월 2일 째였으며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서시〉)고 노래한 지 3년 3개월 남짓 뒤였다.
1917년 북간도에서 태어나 서울 연희전문과 일본 교토의 릿쿄대학, 도지샤대학 등에서 공부를 한 그는 죽는 날까지도 '학생'의 신분이었다. 사회인은 그의 역할이 아니었다. 그는 다만 "궂은 비 내리는 가을 밤/ 벌거숭이 그대로/ 잠자리에서 뛰쳐나와/ 마루에 쭈그리고 서서/ 아인 양하고/ 솨-오줌을 싸오."(〈가을밤〉)하고 노래한 '개구쟁이'였으며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십자가〉)라고 결의를 다진 '의혈청년'이었을 뿐이다.
이 '개구쟁이'와 '의혈청년' 사이에 '소년'이 있다. 소년은 단풍잎이 뚝뚝 떨어지는 가을날, 맑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을 떠올린다. 이 소년 화자는 우리 시가 마련하고 있는 가장 '깨끗하고 순결한' 영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그의 손바닥으로 맑은 강물이 흐르고 또 흐르겠는가.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씻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날 정도로 그의 영혼은 청신하고 해맑다.
그러나 이 '맑음'만으로는 이 시의 '황홀한 슬픔'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여기에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라고 노래한 〈눈오는 지도〉를 겹쳐놓으면 사정은 또 달라진다. 이 시에 따르면 조만간 순이는 떠나고 소년은 상처 입게 될 것이다. 이 상실의 미래가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황홀히 눈을 감는" 소년의 모습에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그것은 훼손되기 일보 직전의 아슬아슬한 미라고 할 만하다. 불안한 아름다움, 그것이 소년이다.
이 '사랑처럼 슬픈' 소년의 초상화는 윤동주가 그려 보인 우리 시의 새로운 경지다. 그는 이 보물과 더불어 스스로 모가지를 드리운 채 영원히 십자가에 못 박힌 소년이 되었다. 이제 참회는 어쩌면 우리 몫인지도 모른다.
신수정·문학평론가
입력 : 2008.06.02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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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1] 서시
- 이 성 복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 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 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사랑은 침묵이다. 단지 시만이 그것을 말하게 한다'고 노발리스는 말했다던가. 그리움이란 그래서 인간이 가진 숙명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인지 모른다.
이성복(56)의 이 시에서 나는 그리움의 길목들을 바라본다. 휑하니 비어 있는 길이 보이지 않는가. 사랑이 가득한 이 사람, 그럼에도 밥을 조르는 육체 앞에 한없이 무기력한 이 사람.그가 '죽고 싶어도 짓궂은 배가 고프다'(〈다시 정든 유곽에서〉)고 노래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놀라워했던가. 거리가 미끄러운 것은 이 사람이 지금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빙판과 같다. 자꾸만 미끄러워 앞으로 나아가지지 않으며 자칫 꺼져버릴 위험의 한복판이다. 하여 이 사람은 '건너편 골목'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정처없을' 수밖에 없다. 이 정처없음이란 김춘수 시인이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나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꽃〉)고 노래했을 때의 그 '몸짓'이다.
날은 점점 어두워 오는데 당신은 나를 부르지 않는다! '맞은편 골목'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자의 눈동자만이 어둡게, 어둡게 젖어들 뿐이다. 마치 그 골목과도 같이.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나에게도 몸과 마음에 붕대를 친친 동이고 입원해 있었던 스물 몇 살이 있었다. 저녁이면 찾아오던 한 여자가 있었다. 병실 복도의 유리창으로 저녁 빛이 스밀 때 그 청춘은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 기억에 없다. 다만 얼굴에 어린 저녁의 빛만이 지금도 통증처럼 남아 있다.
이성복 시인은 우리 '모두 병들었으나 아무도 아프지 않았던' 70~80년대를 가장 개성적이고 가장 아름답게 빚어낸 시인이다. 우리 시문학사에서 그는 하나의 항성(恒星)이 되었다. 그에게 빚이 없는 젊은 시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움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도 '죄'라고 읊었던 그. 그의 은자(隱者)와도 같은 삶의 태도 또한 우리들에게 말없는 긴 그림자를 드리워주고 있다.
장석남·시인
입력 : 2008.09.22 03:29
[2] 사랑하는 까닭
한 용 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루어 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1926년>
어느 날 문득 연인이 "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어오면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누추한 도시 가로수에 번개처럼 꽂힌 단풍을 세듯 사랑을 셈해본다. 세월아, 이젠 사랑에 까닭 같은 건 없어도 좋으련만, 만해 한용운(1879~1944)은 사십 중후반에 사랑의 까닭을 노래한다. 너 벌써 늙었냐고 나를 타박한다. 제목을 붙여놓고 사랑의 이기성과 맹목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그렇다. 아무리 내 사랑이 크다 해도 상대가 내 사랑을 원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니 당신의 죽음까지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당신이 내 '백발'과 '죽음'까지도 사랑하므로 당신을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말하는 편이 차라리 정직하다. 사랑은 만능이 아니지만 모든 처음과 끝이 일어나고 번지는 인간의 붉은, 영원한 샘 아니던가.
독립운동가이자 수도승이었고 사상가였던 만해 한용운은 뛰어난 사랑의 시인이기도 했다. 1926년 나온 그의 시집 《님의 침묵》은 지금 다시 읽어도 아름다운 연애시집이다. 지금 사랑의 열병을 앓는 이라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님의 침묵〉)라며 님의 떠남을 슬퍼한 시도,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나룻배와 행인〉)라며 사랑의 완성을 갈망한 시도 모두 예사롭지 않은 감흥으로 다가올 것이다.
설악의 품속에서 만해가 홀연 '님(당신)'을 전면에 세운 시편들을 쓰기 시작했을 때, 만해의 곁에도 실은 사랑이 있었다. 그가 온몸으로 껴안고 살던 아픈 조국과 부처는 물론이려니와 사랑하지만 가까이할 수 없는 여인이 있었다. 서여연화라고 했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자리에서 그녀가 그를 간절히 지켰고, 그의 노래를 받았다.
만해는 자신의 이력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절정의 연애시로 독립지사와 승려에게 요구되는 세상의 고정관념을 부드럽고도 강력하게 전복시킨다. 선언서로도 경전의 글귀로도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의 혁명. 아니, 혁명인 사랑을. 혁명인 사랑은 통째다.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당신이기에 나는 당신을 통째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하지 않으면 당신은 죽을 것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통째로! 통째인 사랑은 그렇게 서로를 사랑의 주체로 세운다.
가을 들판에 핀 꽃들은 다 어디로 가는가. 사랑은 다 어디로 가는가. 《님의 침묵》 서문 격인 〈군말〉에서 쓰는 바,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인 세계가 비로소 화엄의 뜰에 연화장처럼 펼쳐진다. '기룹다'는 말은 얼마나 어여쁜가. 그리움, 기특함, 안쓰러움, 기다림, 사랑…. 이 모든 말들이 '기룹다'에 스며 있다. 그러니 생각건대,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고 말하는 이는 만해인가 만해가 사랑한 님인가.
김선우·시인
입력 : 2008.09.23 04:49
[3] 먼 후일(後日)
- 김 소 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어!/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는 그 사람이어!/ 사랑하는 그 사람이어!'(〈초혼〉)
소월(본명 김정식:1902~1934)의 시에서 사랑의 상실은 이처럼 가차없이 절절하다. 그의 사랑에 대한 갈구는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어…' 이후 이별과 그리움이라고 하는 정한(情恨)의 정서를 우리 말의 가장 아름다운 분화구로 터트렸다고 할 만하다. 그래서 그의 시는 시대를 막론하여 읽는 사람을 그 뜨겁고 눈물겨운, 그리고도 리드미컬한 언어의 호수 속으로 빠뜨린다. 흥겨운 듯 눈물겨우니 이를 어쩌노!
그의 사랑의 깊이와 그에 응하는 말의 질서는 음악으로도 적절하여 우리 시 중 가장 많은 노래로 만들어져 불리고 있다. 소월의 대표작 〈산유화〉만 해도 남인수의 가요로, 조수미의 가곡으로 모두 애창됐다.
〈먼 後日〉은 소월의 생전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의 맨 앞을 장식하는 것으로 보아 소월 자신도 대표작으로 생각한 듯하다. '못 잊겠지만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라며 떠나간 임'(〈못잊어〉), '심중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임', 그래서 '산산이 부서진, 허공중에 흩어진 이름', 현재('오늘')도 과거('어제')도 아닌 먼 미래('후일')에도 잊을 수 없다고, 잊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그 '임'이다. 과연 우리는 그러한 임을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은 단순한 세속적 사랑의 대상을 이미 '저만치'(〈산유화〉) 초월한 자리의 임을!
소월은 서른 셋이라는 황금의 나이에 생아편을 먹고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 자결은,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날 있으리다.(〈못잊어〉)라거나,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가는 길〉)이라고 한 그의 '임'을 생각해보면 차라리 '순교'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세상을 뜬 소월에겐 김정호(金正鎬)라는 셋째 아들이 있었는데, 6·25때 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반공포로로 석방되어 이남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간혹 서정주 시인의 집을 출입했다고 하는데 미당의 회고에 의하면 기차에서 수레를 밀고 다니는 장사가 되었다가 그것도 아내의 병간호 때문에 못 하게 됐고, 나중에는 국회 의사당의 수위로 살았다 한다. 최고의 '국민 시인'의 아들의 삶 치고는 서글픈 사연이다.
장석남·시인
입력 : 2008.09.24 03:13
[4]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최승자
겨울 동안 너는 다정했었다.
눈(雪)의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따뜻한 땅속을 떠돌 동안엔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 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너의 따뜻한 불빛 안으로 숨어들어가
다시 한 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주인 없는 해진 신발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인 꿈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
청파동엔 숙명여대가 있다. 소나무 숲이 넓은 효창공원은 달밤이 좋았다. 분식집을 지나 강의를 하러 언덕배기를 오르는 시인들이 자주 보였다. 그 애와 내가 밥 삼아 먹던 오래된 와플하우스 주위로 감귤처럼 까르륵 굴러 내리던 추억들이 눈에 선하다. 가보면 모두 와 있는데 너만 없다.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잠든 연인들의 지붕에 하얀 눈이 쌓이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자던 청파동엔 봄이 와도 봄이 아니며 가을이 와도 가을이 아닌 가을뿐이다. 너 없는 벌판에 왔다 가는 여름이 나와 무슨 상관이랴. 쓸쓸하고 추운 삶을 겸허하게 껴안으며 한 이불을 덮고 서로 다리를 포개던 청파동. 기억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넘어 절대로 잊고 싶지 않은 시절, 그 청파동을 기억할 수 있는가.
'세월만 가라, 가라, 그랬죠./ 그런데 세월이 내게로 왔습디다./ 내 문간에 낙엽 한 잎 떨어뜨립디다.// 가을입디다.// 그리고 일진광풍처럼 몰아칩디다./ 오래 사모했던 그대 이름/ 오늘 내 문간에 기어이 휘몰아칩디다.' (〈가을〉)
최승자의 시가 노래했듯이, 세월이 가도 한번 온 것은 언젠가 다시 오는가. 내 기억 속의 그대 라일락꽃으로 오려는가. 어디만큼 다시 쇠꼬챙이로 오긴 오는가. 다시 네게 가 최후로 찔리면서 오래 오래 죽고 싶은데, 한 떨기 꽃이 쪼그라든 낙엽으로 오기도 하고 봄바람이 미친 바람으로도 오는 것이 보인다. 가혹한 사랑의 백만 가지 얼굴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최승자의 시는 세상을 사랑하려는 자의 치열한 난중일기다. 그래서 그의 시는 격렬하고 숨가쁘다. 싸움터의 후미가 아니라 맨 앞에서 창상으로 거덜나며 세상을 뚫고 가려는 안간힘이다. 최승자의 시집 《이 시대의 사랑》(1981년)과 《즐거운 일기》(1984년) 없이 1980년대의 우리 문학을 말할 수 없다. 우리는 그의 시어가 보여주는 순도 높은 비극의 진정성에 홀렸다. 맨몸, 오직 혼신의 맨몸으로 세상의 비극을 향해 날아가 꽂히는 샤먼의 시가 우리를 뿌리부터 적셨으므로. 표창처럼 날리는 그의 시어에 기꺼이 찔린 우리의 상처는 고통스럽고도 환했다. 고통을 통과해 마침내 시원해지는 환부!
지금 그 최승자 시인이 아프다. 병상의 그를 생각하면 언제나 한쪽 마음이 절룩거린다. 사랑 없는 시대에 사랑을 얻으며 사는 일의 귀함을 온몸으로 외치며 그는 우리를 대신해 아픈 것인지 모른다. 그러니 독자여, 마음 모아 그의 쾌유를 빌어주시라. 사랑의 에너지를 믿는 그 마음으로. (계속)
김선우·시인[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 지 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1985>
기다리는 일이란 대체로 진을 빼는 일이다. 어찌 보면 그것은 고급한 형벌같다. 그래선지 세상의 모든 경전은 참고 기다리라고 가르친다. 우리같이 여염한 인간이 경전을 싫어하는 것은 바로 그런 가르침 때문이다. 어떻게 그 형벌을 이겨내는고.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 참으로 쓰디쓴 말이다.
이 시는 기다림이란 형벌 받는 자의 내면의 눈금이다. 심전도 검사 때의 그 그래프 같지 않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힐'때까지의 눈금의 급격한 상승, 그 클라이맥스에서 삼세번 아슬아슬하게, 불안하게, 순간적으로 '너'라며 이어지다가 급격히 눈금은 추락한다. 사랑을 앓는 자의 혈압. 그것을 추동하는 약속 시간과 맥박의 전개가 이 시의 매혹이자 기존의 '연애시'와 다른 '모던'함이다. '아주 먼 데'있는 사랑하는 이를 이렇게 기다리는 일을 우리는 고통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이 시는 사랑의 시이면서 동시에 고통의 초상화다.
황지우(56)의 본명은 황재우다. 오타(誤打)가 나는 바람에 본명보다 훨씬 빼어난(?) 필명이 되었다. 어쩌면 그의 시업은 당대를 향해서 끊임없이 오타를 날리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의 오타의 문법은 공공의 통증을 유발하는 일종의 타작(打作)과 같은 것이었다. "내 마음의 마각(馬脚)이/ 뚜벅뚜벅 너의 가슴을/ 짓밟고 갔구나./ 사랑해!/ 라고 말하면서/ 나는 너를 다 갉아먹어 버렸어./ 내심(內心)의 뼈만 남은 앙상한 과실(果實)/ 묘판(苗板)에다가 너의 생을 다시 이장(移葬)하련다. 사랑해!" (〈나는 너다·333〉) 사랑은 때로 마각과 같은 것이다. 나의 사랑도 너에게, 너의 사랑도 나에게 솜사탕이 아닌 마각이라고 제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관성이 아닌, '사랑해!'라는 말의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어느 날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를 외우고 다니는 주인공을 보았다. 그는 시인이었다. "여보, 지금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죽어가는 게의 꿈벅거리는 눈을 보고 올래?"(〈나는 너다·109〉) 그것이 황지우의 시였음을 안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저게 무슨 말일까? 시를 공부하는 나도 의미가 떠오르지 않아 속으로 민망한 가운데 그러나 이런 것이 왔다. '죽어가는 게의 꿈벅거리는 눈'! 그것은 무엇인가. 하물며 그것을 혼자는 볼 수 없어 '여보'를 찾다니. 그 가없는 여림은 사랑이 마각임을 아는 자의 여림이 아닌가.
장석남·시인
입력 : 2008.09.26 03:12
[6]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성 미 정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씨앗을 품고 공들여 보살피면
언젠가 싹이 돋는 사랑은 야채 같은 것
그래서 그녀는 그도 야채를 먹길 원했다
식탁 가득 야채를 차렸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오이만 먹었다
그래 사랑은 야채 중에서도 오이 같은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야채뿐인 식탁에 불만을 가졌다
그녀는 할 수 없이 고기를 올렸다
그래 사랑은 오이 같기도 고기 같기도 한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식탁엔 점점 많은 종류의 음식이 올라왔고
그는 그 모든 걸 맛있게 먹었다
결국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사랑은 그가 먹는 모든 것
<2003년>
사랑도 변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사랑이니까 변한다. 사랑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나누는 가장 극진한 세상과의 교신 부호. 그러므로 변하는 게 당연하다. 살아있는 거니까. 죽은 자들의 사랑은 돌로 만든 경전 속에 영원할 수도 있지만, 살아있는 우리는 날마다 몸이 변하듯 천변만화하는 감정의 결들과 복닥거리며 살아야 하니까.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닌, 예컨대 집착이랄지 강박이랄지 하는 이름의 그 무엇이지 않을까. 따뜻하고 유쾌한 사랑학이 펼쳐지는 성미정의 시를 보라.
식탁을 차리는 여자는 영리하다. 고정불변의 사랑 같은 것에 붙잡히지 않는다. 여자는 자신의 마음이 속삭이는 사랑의 방언에 솔직하게 귀 기울인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배려와 포용으로 기꺼이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이것은 사랑만이 행할 수 있는 마법, 사랑의 열병을 앓는 사람들이 도달하는 따뜻한 긍정의 세계다. 성미정이 이 시를 쓴 것은 결혼 초기였다. 그때 시인은 식재료를 까다롭게 엄선하는 채식 위주의 여자였고 남편은 아무거나 안 가리고 먹는 남자였다. 음식에 대한 이런 상반된 태도가 사랑, 혹은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도 연결된다는 생각이 이 시의 창작 동기라고 한다.
성미정(41)의 시가 보여주는 긍정은 무턱대고 사랑을 찬미하는 자의 것이 아니다. 생활 속에서 부단히 질문하고 전복하며 도달한 긍정이다. 그는 이 뒷면을 행간에 슬쩍 눙쳐 둔다. 고통을 말할 때에도 삐삐 롱스타킹 같거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다. 그래서 그의 시편들은 블랙 유머의 기묘한 비애가 얼룩질 때에도 따스하고 다감하다. 이런, 불편한 동거의 유쾌!
반복되는 일상의 무덤덤함 속에 잠복한 불안을 주부 성모씨의 배포 좋은 능청으로 풀어놓는 〈여보, 띠포리가 떨어지면 전 무슨 재미로 살죠〉 같은 시나 '사바세계의 사람들은 고통어 자반을 즐긴다'(〈고통어 자반〉)며 고등어자반을 고통어 자반으로 바꿔치기 하는 감각은 일상 속에서 시를 건지는 시인의 낚시법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성미정의 시를 읽다 보면 그가 정말 자신의 일상을 사랑하고 있는 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다 그 안에 숨겨진 발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처럼 유쾌하고 고맙게 긍정되는 당신! 어서 와서 성미정이 차린 삶의 개그를 맛보시라. 관념이 아닌 싱싱한 삶의 개그가 사랑스럽게 반짝거린다.
김선우·시인
입력 : 2008.09.27 03:26
[7] 연(蓮)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
서 정 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하는 이별이게,
蓮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1966년>
바람이 선선하다. 이마에 이 바람이 와 닿는 날들이 되면 별은 초롱히 가깝고 눈빛은 젖는다. 더불어 모든 사물들의 그림자가 길어진다. 일 년을 살아낸 보람은 무엇이었나, 이렇게 묻는 것만 같은 서늘함이다. 무엇을 거쳐 온 바람이기에 우리를 자꾸만 사색의 국면으로 이끄는 것일까.
가을이면 이별의 모습이 유난하다. 여름 철새들도 돌아가고 봉숭아도 분꽃도 또 청춘과도 이별해야 한다. 무성하던 숲도 들판도 해변도 다 휑하니 빈다. 사랑하는 늙으신 부모님은 한차례 더 늙는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이별을, 인생이 겪는 가장 큰 아픔을 암시한다. 하여 가을엔 그 소슬한 바람 속으로 입산(入山)하는 사람도 많다 한다.
미당 서정주(1915~2000)는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자화상〉이라고 당시 식민지 청년으로서의 방황과 고아의식을 절묘하게 계량화하였다. 이후 그 명구절은 모든 청춘들의 동의를 얻었다. 하여 우리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며 이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바람의 변주가 위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이다. 키운 것도 바람이요, 영원으로 이끄는 것도 바로 그 바람인 셈.
만남과 이별은 이승에서의 가장 큰 주제다. 그 중 이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모든 사랑하는 것들과의 이별을 어떻게 마음에서 삭혀낼 것인가.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사이에 우리네 전 인생이 들어 있다고 이 시는 제시한다. '연꽃', 오 그것, 만나러 가는 바람의 설렘과 기대와 꿈으로부터, 만나고 가는 바람의 섭섭함과 괴로움과 아쉬움들, 그 중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은 뒤의 그 슬픔 쪽의 것이라는 제시는 영원을 생각하는 자세를 촉구한다. 바람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것, 그러나 그 한가운데 연꽃이라는 컬러풀한 상징 사물을 배치함으로써 범연한 우리들의 눈앞에 명징하게 드러내 준다. 비유의 계단만으로 된 위의 시는 그래서 무한천공 가을 하늘 같은 여백을, 여운을 남긴다.
바람에게 들었던 극비 에피소드 하나. 미당은 한 여성을 몰래 사모하였다고 한다.(미당은 사랑의 감정에서 일생 헤어나지 못하며 살았다 고백하고 있다.) 어느 날 시내 모처에서 둘이 만나기로 했는데, 여자가 마침 오고 있는 미당을 보니 흰 고무신 바닥에 지푸라기를 잔뜩 묻히고 어기적 어기적 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지푸라기가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차린 이 여성은 급히 달아날 수밖에. 마구 뒤쫓아 따라오며 외친 미당의 말씀, "저기 저 나비처럼 달어나는 저 여자 좀 붙잡아 주소…." 역시 그 상황에서도 시인은 시인이었다는 것! 하하하하하….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입력 : 2008.09.29 03:19
[8] 찔레꽃
송 찬 호
그해 봄 결혼식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 수년 삶이 그렇데 징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 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어라 벙어리처럼 하�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
<2006년>
한때 타임캡슐이 유행했다. 그것에 역사적 자료를 담아 보관하는 공적인 행사도 많았지만, 모름지기 타임캡슐이란 개인의 추억 속에서 빛을 발하는 법. 저마다의 인생에서 타임캡슐을 묻는 시점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 송찬호(49) 시인이 불러낸 타임캡슐은 머언 먼 찔레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 아릿해라. 여자애가 딴 사람에게 시집을 가며 남자애에게 하얀 사기 사발 타임캡슐을 남긴다. "찔레나무숲에 가보라" 하였지만 훗날 가보라는 것인지 당장 가보라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아득한 마음이 불을 지펴 마음에 담아두고만 있지 못할 무엇인가 사기 사발 속으로 흘러 들어갔으니, 그것은 먼 후일 시인이 된 남자애가 기어코 시로 다시 불러내게 될 타임캡슐 속의 편지.
하필이면 하얀 찔레꽃 덤불 아래라니! 찔레꽃의 숨소리를 들여다보고 있는 달밤의 곡절은 아릿하게 가슴을 찌른다. 누군들 한번은 저런 순간을 가진 적 없겠는가. 엎어놓은 흰 사발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전하곤 했던가. 잊히지도 않고 잊을 수도 없는 찔레나무가 한 그루씩은 가슴 한가운데 있었기에.
하지만 조심할 것. 이 시를 읽는 이들은 시인의 실제 경험을 상상하기 쉬울 테지만, 비밀은 아무도 모른다. 송찬호 시인은 소걸음처럼 느리고 정밀하게 시를 세공하는 시의 장인. 봄이면 흔히 만나는 찔레꽃을 가만히 오래 들여다보다가 이런 청춘남녀를 그의 시에 불러와 세공하기로 한 것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그늘이 나의 그늘이 되고, 나의 그늘이 시의 앞면이 되는 생생함에서 그의 연금술은 절정을 이룬다.
송찬호 시인은 고향 충북 보은에서 평생을 사는 농부 시인이다. 농사일이 바빠서인지 도시의 속도에 익숙한 이들이 상대적으로 빠른 것인지, 아무튼 심한 과작이다. 과작인 만큼 그가 세상에 내보내는 시들은 태작이 거의 없다. 송찬호 '쩨(製)'는 거개가 명품들이다. 1989년 나온 첫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를 읽던 그때 나는 대학 2학년이었고, 세상은 지금이나 그때나 여전히 아팠다. 아픈 세상에 위로가 되는 단단한 비극을 그의 시편에서 읽던 기억이 새롭다.
거의 20년이 흐르는 동안 그가 세상에 내놓은 시집은 통틀어 세 권. 농부와 시인을 잘 일치시키지 못 하거나 소박한 농촌일기를 쓸 거라고 생각하는 우리네 감각에 죽비를 치며 그는 이 시대 가장 세련된 미학주의자의 길을 걷고 있다. 속리산과 구병산 줄기가 만나는 보은군 마로면, 자연이 주는 온갖 것들에서 고품격의 아름다움을 탐닉하며 사는 그가 부럽다.
김선우·시인
입력 : 2008.09.30 03:07
조선닷컴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9] 그대 있음에
- 김 남 조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내 마음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그대의 사랑 문을 열 때
내가 있어 그 빛에 살게 해
사는 것의 외롭고 고단함
그대 있음에
삶의 뜻을 배우니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사랑을 이해해 보려던 때가 있었다. 가을 저녁을, 새벽을 이해해 보려던 것처럼 무모한 시도였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차마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세계 앞에서 두렵고 외롭고 떨렸으므로 '이해'까지가 절대로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지식'의 대상이 아니었으므로 이성이 도달할 수 없는 저편에서만 빛났다.
어느 순간 신앙 체험에서 말하는 '들림'과도 같은 사랑이 올 때, 그 사랑은 신성의 반열에 오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랑의 탐구는 곧 신을 향한 질문이요, 탄식이요, 비통한 갈망이다. 사랑이란 진주를 품은 자는 다만 아프고 뿌듯할 뿐이다.
'기쁨'과 '갈망'이 동시에 자라나는 마음이 곧 사랑이고 그것은 근심과 같은 것이라고 이 시는 말한다. 근심은 외롭고 고단한 것임으로 누군가의 손을 부른다. 손 잡는다는 것, 그 맞잡은 손에서 열리는 빛이 곧 사랑의 뜻임을 알게 한다. 손 잡는다는 것, 손 잡아준다는 것이 구원이라면 그처럼 쉬운 일도 없으련만 우리는 그마저도 못한다고 생각하니 그저 부끄럽기만 하다.
처음에 이 시를 눈으로 '읽기' 전에 귀로 '들었던' 분들이 많을 것이다. 메조 소프라노 백남옥의 음성이었고, 작년 봄에 세상을 뜬 작곡가 김순애 선생이 빚은 선율이었다. 송창식의 청신한 목소리와 몸짓 또한 우리 마음에 사랑의 핵심들을 샘물처럼 쏟아 부었다. 발길이 바람 부는 새파란 풀밭을 만나거나 하면 자신도 모르게 그 멜로디를 흥얼댔다.
김남조(81)는 영성(靈性) 가득한 시인으로서 우리 여성 문단의 독보적(獨步的) 존재였다. 지금도 기도와 사랑과 겨울의 시인으로 독자들의 가슴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 신의 보태심 없는 그리움의/ 罰(벌)이여/ 이 타는듯한 갈망/ (…)/ 다 같이 늙어진 어느 훗날에/ 그 전날 잠시 창문에서 울던/ 어여쁘디 어여쁜/ 후조라고 할까/ (…)' (〈候鳥〉). 김 시인은 "아무리 시에 재기가 많아도, 시대에 대한 모럴이 가득해도 영성이 없어서는 미달이지 않는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진정 시의 원로만이 할 수 있는, 갈증 나는 이 시대의 영혼들에게는 샘물과도 같은 말이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입력 : 2008.09.30 22:59
[10] 즐거운 편지
- 황 동 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숱한 청춘의 연애편지에 등장했을 이 시가 세상에 나온 것은 1958년. 올해로 등단 50년이 되는 황동규(70) 시인이 《현대문학》에 발표한 데뷔작이다. 그러니까 이 시는 50살을 먹었다. 그런데 여전히 젊다. 시에도 역사가 생기고 생로병사가 있다. 50살 먹은 이 시가 교과서에 파묻히지 않고 여전히 생생한 현장의 사랑시인 것은 서정시의 뿌리와 통하기 때문이리라. 서정시란 삼라만상과 주고받는 연애에 가까운 것이니!
이 시는 시인이 까까머리 고3학생일 때 짝사랑하던 연상의 여대생에게 바친 시라 한다. 뜨겁고 아찔한 청춘의 섬광. 1950년대 폐허의 서울에 이런 시가 있어주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어떤 각박한 시대에도 연애는 끊이지 않았으니 잔인하고 난폭한 세상을 함께 뒹굴면서 우리의 삶을 어루만져 준 것에 아무래도 우리의 사랑과 연애가 한몫을 하였으리.
초등학교 6학년 때 언니의 책장에 꽂혀있던 한 시집에서 보고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또박 또박 베껴 써 보낸 〈즐거운 편지〉, 그 위문편지를 어느 국군장병 아저씨가 마음에 받았을까. 훗날 다시 읽게 된 그 시집은 《삼남에 내리는 눈》이었다.
이 시의 '내 그대를 생각함은' 이후로 오는 것은 실은 다 여백이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여 스스로 편지를 쓰게(시를 짓게!) 하는 능동적인 여백이다. 나의 짝사랑이 그대 입장에선 사소한 것일 수도 있음까지 헤아린다. 그러나 그대가 '괴로움 속을 헤매 일 때'가 온다면 내가 그대를 지킬 거라고 다짐하는 결연한 열정! 자신의 사랑을 '사소함'이라 말하는 조숙함은 사랑이 아니라면 어디서도 얻지 못할 자세일 것이다.
그리하여 2연에서 나의 사랑은 한없는 기다림이 된다. 나는 이 사랑이 어디쯤에서 그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어쩌면 사랑이 그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이 그칠 때의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이에게 사랑은 그치지 않는다. 그는 사랑의 영원을 믿는 자. 사랑은 노년을 소년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소년을 원숙한 어른으로 만들기도 한다. 사랑은 대상을 향하지만 궁극적으로 인생에 대한 '나의 자세'를 가르치고 견인하는 스승이거니. 처음에 사랑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도 사랑이 있을 것이다.
시인 황동규는 50년 동안 13권의 시집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쟁쟁한 현역이다. 요즘 그가 내놓는 시들은 젊은 시인을 긴장시킨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도 기억력도 떨어지는데 상상력은 줄지 않는다"는 시인의 말이 눈송이처럼 서늘하고 뜨겁게 내려앉는다. 사랑을 아는 심장의 가장 중심으로.
김선우·시인
입력 : 2008.10.01 23:31
[11] 남편
- 문 정 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는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인기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가 얼마 전 종영됐다. 드라마에서 탤런트 김혜자씨의 가출이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그 '아내, 또는 엄마의 가출'을 미리 말한 시가 있었다. 문정희 시인(61)의 시 '여보, 일 년만 나를 찾지 말아주세요/ 나 지금 결혼 안식년 휴가 떠나요/ 그날 우리 둘이 나란히 서서 /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하겠다고 / 혼인 서약을 한 후/ 여기까지 용케 잘 왔어요/(…)'(〈공항에서 쓸 편지〉)라는 작품이다. 시는 '(…)/ 이제 내가 나에게 안식년을 줍니다/ 여보, 일 년만 나를 찾지 말아주세요/ 내가 나를 찾아가지고 올테니까요'라고 끝을 맺는다.
현재 가장 절실한 삶의 문제가 시가 되어 나온다고 한다. 문정희 시인은 위의 시 〈남편〉에서처럼 사랑하여 함께 살기로 한 결혼이라는 제도가, 혹은 남편의 존재가 중년 이후 어떻게 변화를 겪으며 성숙해가는지 솔직하고 과감한 언어로 꽃피우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문정희의 사랑시는 독특하다. 모두가 아는 연애시의 범주를 깨고 중·장년의 사랑의 서글픔 내지 깊이를 단도직입의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냄새는/ 내가 최초로 입술을 가진 신이 되어/ 당신의 입술과 만날 때/ 하늘과 땅 사이로 쏟아지는/ 여름 소나기 냄새'(〈당신의 냄새〉)라는 절창이나,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응"〉)이란 발견에는 서늘한 에로스가 아득하다.'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가 바로 남편이라고 했을 때, 그 '전쟁'에 동원된 살림살이의 오합지졸들을 상상해본다. 슬프다. 허나 그것이 바로 우리네 사랑의 진풍경 아닌가.
이 시는 최근 미국 뉴욕에서 출판되어 주목 받고 있는 문 시인의 영역 시선집 《우먼 온 더 테라스》에 실렸고, 미국 평단으로부터 '펄펄 살아있는 한국 현대 시'라는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여고생 시절, 전국의 백일장 장원을 도맡아 했고 미당 서정주의 발문을 받아 첫 시집을 내서 주변의 선망과 질투를 한 몸에 받았던 문정희 시인. 사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청춘의 열기로 들끓는 시를 쓰는 그녀는 '오색 등불아래 네온사인 아래/ 이름도 몰라 성도 알 필요가 없는/ 익명의 가슴마다/ 사뿐사뿐 언어의 발자국을 찍는/ 황홀한 시인 지상의 무희' (〈프리댄서〉)라고 자신을 규정했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입력 : 2008.10.02 22:34
조선닷컴
[12] 새벽밥
- 김 승 희
새벽에 너무 어두워
밥솥을 열어 봅니다
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습니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랑 무르익고 있습니다
가끔 새벽에 일어나면 밥솥을 열어본다. 별들이 밥이 되어 껴안고 있는 밥솥이 당신의 주방에도 있을 것이다. 꿈과 이상이 현실과 동떨어져 공중부양 중이라면, 그것은 그냥 별이다. 별은 아름답지만 우리의 맨몸을 덮어줄 수도 허기진 일상을 채워줄 수도 없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다시 밥이 될 때까지 우리는 온몸으로 '살아야' 한다. 별이 밥이 되는 삶의 연금술에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으스러져라 껴안는 사랑뿐이다.
타인의 고통을 타인의 것으로만 간주할 때 세계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감수성의 혁명. 이것은 문학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 중 하나일지 모른다.
시인 김승희(56)는 사랑을 통해 별과 쌀을 결합시키며 타인의 장벽을 해체한다. 사랑 없는 '당연'과 '물론'의 세계도 해체한다. 모든 억압과 부자유로부터의 탈주. 독을 없애는 독. 상처를 치유하는 상처. 김승희에게 현실은 매순간 치열한 싸움터다. 사랑 없는 삶이 너무나 많으므로 사랑을 깨우기 위해 시인은 싸울 수밖에 없다. 싸움은 혹독하고 상처는 깊지만 낭자한 상처들에서 싹처럼 별이 돋는다. 사랑을 위해 싸운 상처로부터 돋아난 것들은 두근거린다. 별은 밥이 된다. 생명의 약동과 치유를 향해 있으므로.
김승희는 노래한다.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는 사람들// (중략)/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그래도 라는 섬이 있다〉).
아프다. 현실이 아프고 현실을 견인해내려는 몸부림이 아프다. 사랑이 아니고는 건너기 힘든 세월이 너무도 흔하지 않은가. 그 역시 병상에 있는 가족을 간호하며 힘든 세월을 보냈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고 그가 말할 때 나는 온 가슴으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오래 싸웠으므로 이제 그만 쉬라고 말해주고도 싶다. 하지만 그는 야생의 영혼을 가진 샤먼. 경계를 가로지르며 그는 솟구쳐 오를 것이다. "억압을 뚫지 않으면, 악업이 되어, 두려우리라"고 말하는 사랑의 전사이므로. 사랑의 빅뱅을 꿈꾸는 시인과 함께 세상의 모든 '그래도'에 '새벽밥'을 바친다.
입력 : 2008.10.04 03:07
김선우·시인827 '시인의시.음악.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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